이제 러시아 및 독립국가 연합들과 날로 관계가 개선되는 가운데 그들과의 교류는 곧 우리의 이익과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이런 방향으로 본론의 내용은 간단한 구소련내의 한인들의 분포 현황과 이주 약사, 우리의 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문화 중심의 생활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겠다.
사할린 재 한인이 일본국적을 상실하여도 그들은 일본에 영주할 권리는 있기 때문에 국제인권 B조약 12조 4항 "어느 누구도 자국에 돌아갈 권리를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못한다"는 변호인단의 주장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본다.
최초의 소련으로부터 영주귀국자는 1977년 장전두(張田斗)로 자신의 노력
사할린의 탄광에 끌려가 노역하였다.
본 발제지에서는 현재 러시아 본토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다.
본론
1. 과거의 고려인
1.1 러시아 극동으로의 이주사
1.1.1. 러일전쟁 이전
한인이 러시아 지역으로 이주한 역사는 1860년대 초에 시작된다. 그러나 이는 문서상의 시작
러시아 외에 11개 독립국가로 분리되면서 고려인들이 거주하는 국가에서는 배타적인 민족주의 운동이 확산되었다. 이로 인해 고려인들은 직장에서 추방당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자 다시 연해지방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현재 연해지방 거주 한인들을 중심
러시아에 살고 있다. 2001년 외무부, [재외동포 현황 총계]
그 중 특히 우리는 중앙아시아, 연해주에 거주하는 고려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고려인들은 1860년대부터 경제적인 이유로 연해주로 이주하였던 조선인들을 시초로 하는 연해주와 구소련의 중앙아시아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일컫는
1-1. 중앙아시아한인
현재 고려인은 약 50만명이며 중앙아시아·러시아·우크라이나 등 구소련 전역에 살고 있다. 이는 해외 한인 중 미국(215만명) 중국(214만명) 일본(63만명)에 이어 네 번째를 차지하는 숫자이다. 고려인이 가장 많은 곳은 중앙아시아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3국에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 시 한인들이 일본에 공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국경지대의 한인들을 반 사막지대였던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잘못된 것으로서 당시 일제 식민지 통치하에 있었던 절대 다수의 한인들은 일본을 미워했으면 했지 그들을 도와서 소련에 대항한
러시아연방국가민족정책개념”으로 완성)
*.법안의 특징
1.연방 결성은 영토적인 원칙과 민족적인 원칙에 의해 건설
(이는 소비에트 러시아 이래 견지되었던 전통적 입장을 계승)
2.소비에트 시기 정치적 자결의 원칙보다는 민족문화의 발전에 중점을 둔 정책으로 전환
2. 소수민
1. 기존연구의 한계
(1) 러시아한인이주의 역사가 140 주년을 넘었지만 정작 한국 내에서의 고려인에
대한 인식은 부재한 상황.
(2) 다양한 연구가 나왔지만, 심층적인 연구라기 보다는 연해주와 사할린을 중심
으로 한 나열식이 주를 이루고 있음.
2. 연구의 필요성
(1) 통합과 화합의
아시아의 십자로가 형성되었다. 중국에서의 서역무역은 한나라 이후의 동요기에도 단절되지 않았다. 오히려 둔황․량저우[凉州:武威] 등의 변경도시에서 서역무역이 성행하여 때로는 중앙정부가 무력을 행사하면서 서쪽으로 진출한 적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칭하이를 차지하였던 강(羌)이나 토욕